한국 장애인과 영국이 주는 시사점한국 장애인과 영국이 주는 시사점

Posted at 2009.02.15 11:38 | Posted in 영국★한국 사회

며칠 전 20살의 브라질 모델, 마리아나 브리디가 혈액순환장애로 사지절단을 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소식이고, 만약 그녀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떠한 고통을 겪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브라질 모델, 마리아나 브리디의 생전 모습.

그렇습니다
. 한국은 아직까지 장애인(장애우)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죠. 나 또한 어렸을 때에는 뭔가 모를 이질감이 들었고, 학교 내 그들을 향한 따돌림을 적극 나서서 막지 못하고 그저 옆에서 내 일이 아니니까 하는 무관심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면서


하지만, 런던 유학 생활 동안 이런 인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런던이란 도시가 가진 문화 속에 살면서 장애인 문화도 어느새 몸에 배게 된 거죠.

선 영국 정부는 장애인들에게 최대한 편의 시설을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시내 버스를 타더라도, 장애인 휠체어 자리는 어느 버스에나 있고, 휠체어가 타고 내리기 쉽게 버스 문에 자동 특수 받침대가 있습니다. 한번은 버스를 타다가 오랫동안 정류장에서 멈추고 가지 않아 창밖을 보니 장애인이 보호자와 함께 버스를 타는 장면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광경이어서 처음에는 신기한 듯 쳐다보았죠. 만약, 한국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버스 구조를 완전히 바꿔야 할 것입니다. 먼저 버스 통로에 계단을 없애야 겠죠.


   휠체어 이용 가능한 런던 버스와 이용객의 모습

다른 버스 이용자들은 오랫동안 버스가 멈추어도 전혀 싫은 기색을 하지 않습니다. 원래 영국 사람이 느릿느릿하지만, 버스가 늦게 가더라도 그 이유가 장애인의 탑승이라면, 그들이 하는 일은 그저 버스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거나 그냥 기다리거나 둘 중 하나죠. 비슷한 경우로, 그들은 애엄마가 유모차를 가지고 버스에 타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행동합니다.

나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영국 내무장관을 지낸 데이비드 블런켓(David Blunkett)을 보고 36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장님으로 태어나 영국 살림을 책임지는 최고 고위직까지 올랐죠. 눈이 보이지 않기에 항상 자신의 눈 역할을 하는 골든 리트리버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면, 장님을 한 나라의 장관으로 뽑아줄 수 있을까요한국은 이렇게 되기까지 100년은 족히 걸릴 듯 합니다.


                        데이비드 블런켓 전 내무장관과 그의 도움견들

, 내가 좋아하는 영국 영화 노팅힐 (Notting Hill)’에서도 런던 내 장애인의 파워(?)가 느껴지는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윌리엄 대커(휴 그랜트)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기자회견을 하는 아나 스콧(줄리아 로버츠)을 찾아가지만 사보이(Savoy) 호텔 지배인은 그의 입장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블록버스터(비디오 대여점)카드를 보여주며 들어가려고 애쓰다가 실패하지만, 지배인은 뒤 따라온 벨라(지나 맥키)에게 한마디 듣고 대커의 입장을 선뜻 허락하죠. 벨라는 그 스스로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고, 내가 기억하기에 그녀는 장애인 처우에 관한 기사를 쓰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사보이 지배인은 호텔 이미지의 손상을 걱정해 그녀와 동행한 대커의 입장을 허락한 것입니다. 이렇듯 이미 런던은 장애인들의 위상이 보통 사람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한층 더 높음을 상호 인정하고 있습니다.

영화 '노팅힐'에서 사보이 호텔에서 실랑이 중인 데커를 도와주는 벨라

영국이 선진국이라서 혹은 서유럽 국가라서 이런 장애인의 처우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한 인식, 편견의 유무죠. 경제적으로 이미 한국은 유럽을 많이 따라왔고, 포르투갈과 그리스와 같은 나라는 경제 관련 수치상으로도 거의 비등비등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영국의 가장 큰 차이는 그 경제 개발 속도죠. 영국의 경제 개발은 한국이 조선시대 중기 때 이미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서양 세계를 뒤쫓아 경제 개발을 순식간에 이뤘지만, 이것은 내실은 포기한 채 외양에만 신경 쓴 꼴이죠.

먼저 사람이 진정 살만하고 거기에 따라 인간애가 깊어질 때 고도의 경제 개발에 따른 문제점을 보다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랐던 것일까요? 먹고 살기에 바빴던 시절은 가고 이제 배가 좀 부르기 시작하니까 좀더 배부르겠다고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행태와 인식이 정부에서부터 기업 또는 일반 사람까지 팽배합니다.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전자는 지난해 총 취업자의 몇 퍼센트를 장애인들로 채우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차라리 벌금을 낼 것이라는 기사가 몇 달 전에 나오기도 했었죠. 아직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이렇습니다. 한국의 대표기업조차 아직도 장애인은 그저 걸림돌이 되는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이죠.

그럼 영국은 걸림돌이란 존재를 내무장관으로까지 임명했던 것일까요? 그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 이후 블런켓 내무장관은 차기 영국 총리 2순위였습니다. (1순위는 현재 총리인 고든 브라운, 그 당시 재무장관) 불미스러운 일(사생활 문제)이 없었다면, 지금쯤 장님 영국 총리를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어쩌면 세계는 미국에서 혼혈인 대통령이 당선된 것보다 더 떠들썩했을지도 모릅니다. 장님이 한 나라의 최고 수장이라니...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한국은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합니다. 한국정부는 이젠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 개선에 힘쓰고 장애인 편의 시설을 늘려주는 데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경제 상황으로는 10조를 가지고 아무리 경제 발전에 힘쓰는 것보다 차리리 이 기회에 장애인들에 대한 처우와 인식 전환에 힘쓴다면, 또, 그로 인해 사회 편견을 하나씩 제거해나갈 수 있다는 용기가 국민에게 생긴다면, 머지않아 진정 선진국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